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칼루스오르도(쓰레기 마을)에 지난달 19일 도착하자 쓰레기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웠고 그곳에서 날아온 모래 먼지는 5㎝ 넘게 발밑에 쌓였다.
마을 어귀에 서 있던 네 살배기 여자아이는 땅바닥을 발로 차 먼지를 일으키며 뛰어놀았다. 바지를 벗은 채 온몸을 모래 먼지로 뒤집어쓴 남자아이는 초콜릿을 달라며 달려왔다.
김철규 광주성결교회 목사는 이날 유종호 기아대책 봉사단, 김태일 기아대책 국제사업부문장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후원자로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김 목사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며 “아이들의 교육과 영양 문제에 작은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진흙을 쌓아 만든 좁은 집에 들어서자 낡고 허름한 텔레비전이 눈에 띄었다. 방바닥은 장판 하나 없이 진흙을 그대로 드러냈다. 아이들은 손님 대접할 찻잔을 구하기 위해 옆집을 오갔다. 찻잔에는 파리가 쉴 새 없이 앉았다.
복싱 선수가 꿈이라는 10살 소년은 동생들과 함께 자신이 받은 상장을 김 목사에게 보이며 자랑을 늘어놨다. 김 목사는 “맞벌이 부모 아래 오빠가 동생을 보살피는 모습에서 가족애가 느껴진다”며 “우리가 보낸 작은 후원은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그 가정을 살리는 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공사장 막일과 시장 허드렛일 등 일자리를 찾아 수도 비슈케크를 찾았다. 이들이 2010년대 들어 쓰레기 소각장 주변에 집을 짓기 시작하며 쓰레기 마을이 형성됐다. 제대로 된 화장실과 병원, 포장도로도 없는 이곳에 1만여명이 가정을 이뤘다.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문 이들에게 찾아온 것은 대개 폐암이나 기관지암 같은 질병이었다.
나무 한 그루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이곳에 3000여명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은 아이들의 방과후교실을 책임지기 위해 이곳에 아동개발프로그램(CDP) 센터를 세웠다. 센터에선 462명의 아이들이 컴퓨터와 영어 한국어 태권도 댄스 미술 등을 배운다. 키르기스스탄 전체로 확대하면 기아대책은 5개 센터 2000여명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
이날 오후 CDP 칼루스오르도 센터에서 운동회가 열렸다. 전통 의상으로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전통 연극과 무용을 선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아이들은 공 전달하기나 띠 빼앗기 게임, 풍선으로 탑 쌓기와 페이스페인팅 등을 하며 숨 가쁘게 뛰어다녔다. 10년째 CDP에서 운동회를 맞이한 아스칼 알리(16)는 “CDP는 내 두 번째 집”이라고 소개했다. 아버지는 시장에서,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느라 알리를 돌볼 시간이 없지만 알리는 CDP에서 배우며 학교에선 학급 반장을 맡는 등 꿋꿋하게 자라고 있다.
알리는 오전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오후 1시 CDP를 찾아 부모님이 퇴근하는 오후 5시까지 영어 한국어 러시아어, 컴퓨터와 태권도 등을 배운다. 키르기스스탄은 11학년제로 초·중·고등학교 구분이 없다. 11학년 졸업반인 그는 “다시 어려져 CDP에 계속 있고 싶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CDP 막내에서 이제는 큰형으로 자란 알리는 “한국 후원자들의 따뜻한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그들이 찾아오면 종이로 하트 모양 백조 한 쌍을 만들어 직접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CDP 직원들은 수시로 학생들의 집을 찾아가 생필품을 전하고 있다. CDP 칼루스오르도 센터 설립 때부터 직원으로 일한 데칸바에바 박티굴(45·여) 매니저는 “아이의 가정에 찾아가 화장실을 직접 만든 적이 있다”며 “그 화장실에서 노래 부르며 일을 보는 아이를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쓰레기 마을 아이들이 변하면서 가정도 변했다”며 “이제는 그 아이들이 모여 또 다른 아이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보낸 작은 후원이 밀알이 돼 쓰레기 마을에서 열매를 맺고 있다. 아직도 황량한 사막과 같은 곳이지만 젊은이들이 많은 지역인 만큼 희망도 있다. 10주년을 맞은 CDP 칼루스오르도 센터는 어느새 850여명 아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졸업생 중에는 학교 선생님도, 지역 정치인도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김 목사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주신 은혜 가운데 한 부분을 빚진 자의 마음으로 나눌 때 더 좋은 것으로 채워지는 것을 경험한다”며 “풍부함 속에 빠져있을지도 모를 한국교회가 하나님이 바라보는 삶의 땅을 체험해 스스로 돌이켜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칼루스오르도(키르기스스탄)=글·사진 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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