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랑, 거룩, 긍휼, 전능하심, 온유
하심, 광대하심, 영광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진노 하신다거나, 징계를 내리신다거나, 벌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이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위에 나열한 것들 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자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치료자, 절대자이시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
을 떠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으며, 이 땅에서 진정한 평강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먼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의 어원
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여호와’란 이름은 히브리어로 아무도 정확하게 발음하지는 못합니다. ‘예호와흐’가 가장 원 발음
에 가깝다고 하지만, 히브리어 모음 변화에 따라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라 부르며, 순복음에서는 야훼
하나님이라 칭합니다.
이 발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 ‘여호와’라는 본뜻이 더 중요합니다. 창세기에서 나온 여호와의 뜻은 ‘아도나이’, 즉
‘주님’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기의 모세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의 뜻은 ‘스스로 계신 분’ 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I am who I am.’ 이며, 장황하게 표현 하자면 ‘전에도 계셨고, 현재도 계시며, 영원히 계시는 분’ 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요한계시록으로 가봅시다. 예수님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처음과 끝이라는 뜻인데,
태초에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절대자이신 창조자라는 의미심장한 뜻입니다. 결국 우리 피조물과 다르신 우리를 창조
하신 분이시며, 절대자란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어 홀로 영원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구별되다.’의 뜻을 살펴보면, ‘거룩함’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카도쉬’ 라고 하며,
그 뜻은 ‘피조물과 구별되다, 죄가 없고 죄를 창조하지도 못하시는 분, 창조자로서 모든 존재 중에서 유일하게 찬양받아
마땅하신 영광의 주.’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시도다.’ 라고 끊임없이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스랍은 천사를 뜻하는데, 하나님께서 만든 피조물 중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많은
피조물이 바로 천사입니다.
요한 1서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첫 번째 속성을 사랑이라고 많이 오해를 하는데,
이는 성경과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풀어야 합니다. 종교개혁 이후 칼빈의 후예들인 영국의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거룩
하심을 가장 강조했으며, 반면 사랑을 간과했던 점이 있어 율법주의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여 결국 현재 세속주의로 변질되고 맙니다. 교회사적으로는 영국과 미국의 복음이
강조하는 바가 다르지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 방법이신 십자가 복음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태초 이전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존재하셨으며, 세 분은 위격만 다를 뿐, 세분 다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은 동일합니다.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에서 ‘성령은 성자에게서 발출되었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발출
되었다.’ 라고 하지만, 또한 이것이 정식 교리로 공인 받고 있긴 합니다만, 철저하게 조직신학적 관점에서만 봐야합니다.
세 분 다 역할이 아주 조금씩 다를 뿐 동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스스로 계신 자’ 라고 하셨는데, 이것을 매우
심오하게 체험하기란 우리가 천국에 가본 이후에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태초에 세 분께서 먼저 천사를 창조하셨으며, 그 당시 천사에게는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를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평생토록 하나님만 찬양하던 천사의 1/3이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자신이 찬양을 받기 위해 타락하여, 저주를
받아 마귀가 된 것입니다. 이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악을 창조하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구를 포함한 온 우주를 창조하신 이후 아담과 하와인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그들에게 천사들
만큼 혹은 약간 더 분방한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 때 에덴동산에서 뱀의 형상으로 둔갑한 사단이 사람에게 금지된
선악과를 먹게 하는 죄를 범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사랑하셨지만 그분께서는 거룩하시므로 인류에게 사망
의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피 묻은 짐승의 가죽옷을 입혔다는 것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 대속을 예표 합니다.
그 아담의 원죄는 계속해서 유전되었고, 창세기의 할례의식, 출애굽기의 열 가지 재앙 중 장자의 재앙, 그리고 레위기
의 양과 염소의 피의 제사 이 모두 그리스도의 보혈의 구속을 상징합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사(없이)하시고 정결케 하시므로,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나니’ 라고 나와 있으며, 요한복음 19장30절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모진 고통 끝이 물과 피를 다 흘리시며 ‘다 이루었다.’ 하시고 소리 지르시며 돌아가신 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충족
하신 사건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하신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임으로, 타락한 피조물도 거룩해져야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그와 같이 영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9장 2절에 ‘나 여호와는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라고 나와 있는데, 바로 이것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거룩하시므로 우리를 사랑하셨지, 사랑이 무한하시므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저희 담임 목사님인 김덕겸 목사님께서는 기도를 하실 때 거창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시지 않으십니다. 단지 ‘거룩
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라고 간단하게 그분의 제1 속성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므로
우리 신자는 구원 받은 이후에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우리 신자들의 드려야 할 최상의 반응이 무엇인지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사랑교회 성도 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