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프랑스라는 국가를 생각하면, 먼저 파리나 에펠탑을 생각하게 되고, 조금 더 아는 사람들은 샹젤리제 거리와 크루아상이나
바겟 빵 정도를 떠올리곤 합니다. 저도 프랑스를 전혀 가보지 못했지만, 실제 프랑스를 다녀온 사람들이 쓴 책들을 읽으면, 우리
가 갖은 프랑스에 대한 것은 환상 또는 거짓된 망상이라고 표현합니다. 실제 에펠 탑은 반려견의 분뇨 등으로 더럽기가 한량이
없고, 주요 도시들은 무슬림이 장악하여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물론 남부 프랑스의 관광하기 좋은 농경지대는 장점이지
만, 인종차별과 치안이 상당히 불안한 국가입니다.
옛적부터 파리(Paris)는 지옥(hell)의 대체어로서 많은 문학가들에게 상징적으로 사용된 표현이고, 현재에도 세계 유행의 중심
지이자, 패션 트렌드의 시작점으로서 지독하게 세속적인 나라입니다. 또한 러시아와 함께 유럽에서 정신질환자가 가장 많은 비
율을 보이는 불명예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유럽 속의 미국이라 불릴 정도로 퇴폐의 상징인 재즈를 유럽에서 유일하게 즐기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현재 프랑스에는 톨레랑스라고 해서, 영어의 톨러런스 즉, 관용의 정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것의 기준이 자기 자신
이며, 잘 알려진 ‘떼제 공동체’ 같이 종교다원주의에 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어, 프랑스 선교는 더더욱 어려워지게 됐습니다.
프랑스는 종교개혁자 존 칼빈을 배출한 나라이지만, 영국과는 딴판으로 왕실이 로마 카톨릭을 적극 권장한 반면, 개신교에
대해 지극히 배타적이어서 개신교가 사멸하고 만 나라입니다. 16세기의 칼빈의 종교 개혁도 파리가 중심이 아닌 스위스의
제네바가 사역지라서, 칼빈이 스위스-프랑스 이중 국적이지만, 결국에는 스위스 종교개혁의 거장으로 교회사에 기록고 있습
니다.
그의 대표적 제자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그의 본국에서 활약했으며, 또 한명의 제자 테오도르 베자는 프랑스에서
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독일의 멜란히톤의 스승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 프랑스 개신교는 위그노라고 하는 프랑스 개신교도에 의해서 종교개혁 이후 300년 정도 생명력을 유지하게 됩
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의 개신교도를 위그노라고 하지만, 세 부류에 의해서 얀센주의자, 정적주의자, 그리고 위그노교도들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지, 정, 의 모두가 필요합니다. 첫째로는 성경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을 알아감으로써,
그 분을 지식적으로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감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사랑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십자가를 짐으로서, 성화의 삶부터 시작하여, 더러는 선교사, 소수는 순교자의 삶까지 살게 됩니다.
첫째로 말한 얀센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지성적으로 사랑했던 부류들이었습니다. 얀센주의는 종교개혁 이후 약 100년
뒤에 네덜란드의 가톨릭에서 이단으로 정죄받고 퇴출된 얀센이라는 사람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그가 로마 카톨릭에서
퇴출당한 이유는 “로마 카톨릭은 인간의 공로로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성경은 오직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음
으로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며, 나는 예수의 피로 죄사함 받았다.”라고 고백한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책을 저술한 죄목
때문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얀센주의가 이단일지 몰라도, 얀센주의는 네덜란드보다 오히려 프랑스의 일부 귀족들 사이에서 개신
교주의로 싹트게 되었습니다. 낭트 칙령이 철회되기 전까지 그들은 올바른 교리로서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얀센주의의 대표적인 거장은 30대에 요절했던 천재 수학자 ‘블래즈 파스칼’입니다. 파스칼은 대표작 ‘팡세’를
집필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에 대한 열정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세계에 널리 알렸습니다.
둘째로는, 정적주의자들입니다. 독일 경건주의에 영향을 받았던 스페인의 ‘몰리노스’가 창설된 개신교 주의입니다. 이
들은 침묵과 관상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을 묵상하는 감정이 뜨거운 사람들입니다.
정적주의도 역시 스페인 본토에서보다는 프랑스의 일부 귀족 사이에서 인기가 더 많았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잔느
귀용 부인과 프랑수아 페늘롱 백작입니다. 귀용 부인은 소싯적에 주님을 너무 사랑해서 일주일 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다
고 고백할 정도로 정신병적으로 주님을 사랑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의지가 나약한 것이 흠이었습니다.(제가 ‘믿음과
현실 사에에서 1부에 위그노 교도들이 감정이 뜨거웠으나 의지가 약했다고 잘못 표기한 것을 사죄드립니다. 위그노가
아니라 정적주의자들입니다.) 귀용 부인은 신구약 66권 중에서 20여 권에 달하는 주석을 출판물로 남겨두기도 했습니
다. 영국의 매튜 헨리의 주석 많큼 스케일이 크지도 않고, 개인의 주관이 많이 들어갔지만, 예수 피의 공로를 거의 모든
절에서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위그노교도들로서 프랑스의 귀족보다는 주로 일반 서민층에서 개신교도들을 통칭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국 왕실이 로마 카톨릭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낭트 칙령이 해제된 이후 더욱 순교를 하게 됩니다. 앞서 말한
낭트 칙령이란, 종교개혁 이후 약 200년간 프랑스의 위그노들에게 제한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게 된 칙령을 말합
니다. 하지만 스페인과 프랑스가 연합하여 낭트칙령이 철회된 이후, 강제로 위그노들을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시키자 하
여, 수많은 무리가 순교했습니다. 이들은 결국 종교의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의 포츠머스시로 이민을 가고
맙니다.
위그노들은 종교개혁 이후 프랑스에서 300년 정도를 버텼으며, 마지막 100년간은 수만 명이 순교하는 대역사를 이뤘
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주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지, 정, 의 세 가지 모두가 다 균형을 이루어 발전해 나가야한다는 사실을 이
프랑스의 얀센주의, 정적주의, 그리고 위그노들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영국 목사님들은 예수님을 닮아가며 그분의 십자가를 지자는 설교를 많이 하셨고, 미국 목사님들은 십자가
에 달리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자는 설교를 주로 하십니다. 결국 영국 목사님들은 성화와 의지적 신앙에 대한 설교를,
미국 목사님들은 첫사랑에 대한 설교를 하신다는 겁니다.
해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계시록의 에베소 교회와 버가모 교회의 장점을 닮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믿음의 싸움을
잘하였으나 첫사랑을 버렸었고, 버가모 교회도 역시 믿음의 경주를 잘 해왔지만 거룩함의 상실을 책망 받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예배와 전도까지도 포함하여 성화와 십자가 사랑의 신앙이 잘 균형 잡히고, 날마다 성장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
으면 할 수 있습니다. 눈 앞에 고난을 약으로 삼고, 그것을 뛰어 넘어가는 승리하는 삶을 날마다 살아갑시다!
사랑교회 성도 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