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지성인들이 고대와 중세는 종교의 시대, 근세는 이성의 시대, 그리고 현대는 과학의 시대라고 말 합니다.
90년대에 들어서 그 시대 나름대로의 종교, 교육, 과학이 공존했다는 것이 공론화 되었지만, 아직도 현대인들은
과학을 맹신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근세 시대의 계몽주의 시대부터 인간의 이성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하게 되는 경향이 생겼습니
다. 임마누엘 칸트의 인본주의적 사고, 데카르트의 모든 것을 의심해 보는 경향, 그리고 니체의 무신론이 판을 쳤
습니다. 결국 19세기 들어서 찰스 다윈의 ‘진화론’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의 과학자들은 모두 다 예수님은 믿지 않을지 몰라도, 창조주는 믿고 있습니다. 진화학자들이 끊
임없이 연구한 결과, 진화론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과학을 잘 알지 못하지만, 생물학에서 종이라는 것이 있는데, 예를 든다면 고양이 과에 속하는 종은 호랑이,
표범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종 내에서 진화는 희박하지만 돌연변이 과정을 오랜 세월을 거쳐서
진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것을 소(小)진화 라고 합니다. 하지만 같은 종외의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것
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대(大)진화라고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비크리
스천인 김용준 박사님께서도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라는 저작을 통해, 박테리아에서 원숭이를 통해 인간으로 진화
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창조주가 살아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허기야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고 있으므로, 유일한 창조주는 여호와 하나님이며, 오직 예수님
을 통해서만이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굳건히 붙잡고 있습니다.
한편, 기독교 안의 복음주의 내에서는 지금도 사도행전같이 성령이 지금도 역사하시는가에 따라, 근본주의와 신
복음주의로 나뉘고 있습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사도시대 이후로 끝났다고 말하는 반면, 신복음주의자들과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은 지금도 성령께서 여전히 역사하시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사적으로 추적해 들어가면, 4세기 경의 어거스틴의 저작 ‘하나님의 도성’ 22장에는 ‘지금도 여전히 신유
의 역사가 활발히 진행된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암울했던 가톨릭의 이적들은 성령이 아닌 악령의 거짓 기적이었지만, 종교개혁 이후로 보면, 루터시대에도 신유와 축
사가 있었습니다. 16~17세기 또한 1세대 청교도들이 방언을 경험했지만, 스스로 억제시켰던 기록도 있었습니다. 또한
18세기 휫필드, 웨슬리, 에드워즈의 대각성 운동의 시대에는 설교 중 청중들이 뒤로 넘어지는(holy dying 또는 holy
slain 이라고 합니다.) 현상들이 즐비했습니다. 또한 19세기의 스펄전 목사님에게는 예언의 은사가 있었고,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찰스 피니와 심슨을 중심으로 신유 현상이 미국 현지와 아프리카 선교 현장에서 끊임없이 나타났습니다.
교회사적으로도 이렇게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20세기 초반에 벤자민 워필드를 중심으로한 근본주의 세력들은 20세
기 중반의 그래샴 메이천을 거쳐서 20세기 후반의 존 스토트, 한경직, 옥한흠 목사님 그리고 현대 21세기의 존 맥아더,
존 파이퍼 목사님들께서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성령의 역사가 사도시대 이후로 끝이 났다고 성령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은사장인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을 그대로 믿어야지, 자신이 체험하지 못했다고 성령의 역사를 함부로 비난해
서는 안 됩니다.
성령운동 중에 가톨릭 신비주의와 혼합된다거나, 동양 종교와 혼합되는 등 다원주의 성격을 띈 불건전한 성령운동 때문
에 성령운동이 비판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20세기 초의 세이무어, 맥퍼슨, E.W.케년 등의 은사주의는 말씀과 무관한 악령
의 역사였습니다. 현대의 릭 조이너, 조셉 프린스, 타드 벤틀리, 신디 제이콥스 등이 주도하는 은사주의 역시 말씀과 무관
한 불건전한 성령운동입니다.
하지만 건전한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있습니다. 스펄전 이후 스미스 위글스워스, 이반 로버츠, 제프리스 형제가 주도했던
영국의 성령운동 그리고 60년대 이후 캐더린 쿨만, 오럴 로버츠, 존 윔버, 베니 힌, 현재의 T.B.조슈아 목사님이 이끈 성령
운동은 말씀 중심의 오직 예수님만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중 중간에 번영신학으로 변질되거나 배도한 분들도 있었
긴 하지만, 이들이 한창 사역하시는 동안에는 오직 예수님을 위해 생명이 다하도록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성령의 은사 중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방언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세계 인구 70억 중에 10억 정도
가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어서, 방언보다는 신유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신유란 영어로 Divine healing 즉, 신적인 치유로, 초반 불신자가 거듭나는 경우에는 즉각적으로 치유되는 경우가 많습니
다. 하지만 구원 받은 이후 성도들의 경우에는 점진적으로 성화를 동반하며 오랜 세월 끝에 고침 받는 사례가 거의 공식화
되어 있습니다. 물론 예외가 있긴 하지만, 말씀이 체계화된 경우에 창조적 치유는 적게 나타나며, 아직 말씀이 자리 잡아야
할 곳에서는 창조적 치유역사 혹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까지도 일어납니다.
한 가지 경계해야 할 것은, 신유를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반 은총인 의학의 도움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고1 휴학 기간 때, 저의 목소리를 사로잡고 있는 영을 여수 우리 동산교회의 한정기 목사님께서 축사하시자, 제가
변성된 목소리를 그 다음 날 어머니께 처음으로 말한 놀라운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신유에 지나치게 치우친 나
머지 의사들을 잘 믿지 않는 균형을 잃은 사고가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대 중반에 저혈압이 찾아왔을
때, 제가 병원은 안가고 ‘주께 가까이’ 라는 찬양을 수십 번 반복해도 낫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집에 혼자 있었는데, 가까
이 사는 이모님께 전화를 걸어,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건강이 회복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지금도 당연히 역사하시지만, 일반 은총인 의학의 도움을 무시해서도 안되며, 더욱 중요한 것은 말씀 중심
의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기름부음이 충만한 예배자리에서 성령님을 깊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제가 현재 다니는 서울 강서구 염창동 사랑교회에서는 매주 목요일 저녁 8시마다 성령찬양집회가 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은
집회를 인도하시는 김덕겸 담임 목사님의 저서 중 한 제목과 동일합니다. 찬양과 말씀과 기도가 균형을 이룬 기적의 집회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사랑교회 성도 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