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은 총 27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바울의 저작이 14권이며,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산증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는 성경의 정경
이 아직 만들어지기 전이었고, 성령론 또한 애매했습니다. 확실히 육체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던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베드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야고보, 유다
이렇게 7명입니다. 특히 가장 먼저 보이셨던 막달라 마리아 외에 남성 중에 가장 먼저
보이셨던 베드로, 베드로가 쓴 베드로 전후서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의 가장 확실한
증거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베드로전서 1:18~19절은 “은이나 금같이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라고 바울보다도 더 확실히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바울은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체의 예수님을 보았을까요?
소수의 신학자들은 그 학설을 이 말씀을 그저 문자적으로 해석한 것에 기인하여 주장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5-10절에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
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
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여기서 소수의 신학자들이 고린도전서의 저자인 바울, 즉 내게도 라는 말을 문자적
으로 잘못 해석하여,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부활체로 예수님을 보았다고 성경을 오독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은혜받고 성령에 따라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또한 세세하게 제대로 알아가는 것 또한 정말 중요
합니다.
이것은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두란노에서 나온 연대기 성경이나, 현대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팀 켈러 역시 바울이 부활체의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라, 성령으
로 오신 예수님을 다메섹에서 체험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무 쉬운 문제입니다. 성경을 사도행전만 놓고 볼 때에도 시간상으로 따져보면,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스데반의 순교 직전만 하더라도 바울은 스데반을 선동하여 돌로
쳐서 죽이려고 분기가 탱천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눈이 멀어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고 눈에 비늘이 벗겨져 예수님을 본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체가 아닌 영으로 오신 예수
의 영, 즉 성령님이 임하여 거듭난 사건을 묘사한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령님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직접 쓰지도 않았고, 신자에게 임하였다
가 떠나가기도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3절에는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셨다고 하고 있
으며, 사무엘상이나 에스겔서를 비롯한 곳곳에 ‘여호와의 신’이라는 표현도 많이 등장합
니다.
보통 성신이라 함은 영어로 “Holy Ghost”라고 하지만, 이는 성령님을 모독하는 단어로
써 20세기부터는 영어성경에 정관사를 붙인 “the Holy Spirit”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성령론은 수맣은 목사님들께서 저술하셨지만, 1800년대 후반 영국의 스미스 위글스워스
를 포함한 오순절주의의 회복 때부터, 더 엄밀하게 따지면 1800년대 중반의 A.B.심슨
목사님께서 최초의 현대적 성령론을 저술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이 저술된 시절에는 성령님을 “예수의 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7절을 보면 “무시아 지방 가까이 이르러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하자, 그러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더라.”라고 씌여져 있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사도행전의 저자 의사 누가는 성령
님을 몸소 깊히 체험했지만, 조직신학적으로는 자세히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의 저작 중에 가장 먼저 지어진 책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살전 1:5를 보면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
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
라.”라고 처음으로 성령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헬라어로는 처음으로 “프뉴마”가 쓰인 것
이지요.
물론 신약성경 처음의 마태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셨다고 성령님의 헬라어
명칭이 “프뉴마”가 나오는데, 마태복음의 저작 시기는 데살로니가전서보다 그 후에 나왔기
때문에, 바울로 인해서 최초의 성령론이 완성됐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의 성령
으로 오신 예수님의 영을 만났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며, 확실한 사실입니다. 앞서 말
했던 고린도전서 15장의 바울, 나에게도 보이셨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성을
강조한 의미이지 문자 그대로의 뜻은 아닙니다.
이 글이 너무 성경신학적으로 또한 조직신학적으로 너무 따지는 글 같이 되었지만, 성경
을 확실히 그리고 더 자세히 알아보자는 취지로 쓰게 된 것입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바울이 예수님을 부활체로 보았다고 잘못된 상식을 갖게 되면, 사도행전과 신약성경에 오
류가 있다는 성경 무오설을 파괴시키는 죄를 짓게 된다는 점입니다.
자! 그러므로 우리는 한 점의 오류와 흠도 없는 성경을 상고하여, 예수님처럼 그의 생애를
닮아가는 삶은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앞서 서두에 말했던 베드로전서의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의 공로를 날마다 묵상하고, 또한 감사하며 그 사랑에 대한 합당
한 충성된 삶을 삽시다!
사랑교회 성도 김정현